농업 집단화 과정에서 대기근이 발생한 이유
집단화 정책의 문제점
부농(쿨라크) 탄압: 스탈린은 비교적 잘사는 농민인 쿨라크를 "계급의 적"으로 규정하고 재산을 몰수하거나 시베리아로 추방, 문제는 이들이 농업 기술과 경험이 풍부한 핵심 인력이었는 점
강제적 집단농장 편입: 개인 농장을 없애고 콜호스(집단농장)로 강제 통합했는데, 농민들은 자신의 토지와 가축을 잃게 되자 강하게 저항
농민들의 저항과 그 결과
가축 도살: 농민들은 집단농장에 가축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잡아먹자며 대규모로 가축을 도살, 소련 전체 가축의 절반 이상이 사라짐
생산 의욕 상실: 자신의 땅이 아니게 되자 농민들의 생산 의욕이 급격히 떨어졌고, 농업 생산량이 크게 감소
농업 기술 손실: 숙련된 농민들이 추방되거나 탄압받으면서 전통적인 농업 기술과 노하우가 사라짐
정부의 잘못된 대응
과도한 곡물 징수: 생산량이 줄었음에도 정부는 공업화 자금 마련과 도시 공급을 위해 농촌에서 과도하게 곡물을 징수
수출 지속: 외화 획득을 위해 기근 상황에서도 곡물 수출을 지속
이동 금지: 농민들이 식량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을 금지
기후적 요인
1932년에는 가뭄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됨
결과
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1932-1933년 대기근이 발생했고, 특히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심각했음(홀로도모르).
본질적으로는 농업의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을 무시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급진적으로 변화를 강요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음
농민들의 반발에 관하여
초기 볼셰비키의 농민 정책
레닌 시기의 모순: 볼셰비키는 1917년 혁명 때 농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"토지를 농민에게!"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음, 실제로 지주의 땅을 농민들에게 분배
신경제정책(NEP, 1921-1928): 레닌은 내전 후 경제 회복을 위해 개인 농업과 소규모 상업을 허용, 농민들은 잉여 농산물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팔 수 있었고, 이 시기 농업은 상당히 회복
농민들의 입장
실용적 관점: 대부분의 농민들은 추상적인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보다는 자신들의 실질적인 삶에 더 관심이 있었음, 토지를 소유하고 자유롭게 농사지을 수 있다면 정권이 누구든 상관없다는 입장
전통적 농업 방식: 수백 년간 개인 농업에 익숙했던 농민들에게 집단농장은 완전히 낯선 시스템
스탈린의 급진적 전환
정책 변화: 스탈린이 권력을 잡으면서 NEP를 폐지하고 급속한 공업화와 농업 집단화를 추진, 이는 기존의 약속을 뒤엎는 것
이데올로기적 동기: 스탈린은 개인 농업이 자본주의적 요소라고 보았고, "사회주의 건설"을 위해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김
경제적 계산: 공업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농업에서 잉여를 강제로 추출하려 했고, 집단농장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
사회적 합의의 부재
위에서 아래로의 강제: 농민들과 충분한 논의나 합의 과정 없이 당의 결정으로 일방적으로 추진
반대 의견 억압: 농민들의 반발을 "반혁명 활동"으로 규정하고 무력으로 진압
정보 통제: 집단화의 문제점들이 상부에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고, 현실을 무시한 채 정책을 밀어붙임
결론
결국 농민들의 반발은 공산주의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, 급진적인 정책 변화에 대한 거부감과 생존에 대한 위기감이 더 컸다고 볼 수 있음 레닌 시기에는 어느 정도 현실적 타협이 있었지만, 스탈린은 이데올로기적 순수성과 급속한 변화를 추구하면서 농민들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
이는 "혁명적 변화 vs 점진적 개혁"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